
솔직히 저는 누군가가 '술을 잘 마시는 것'이 어떤 능력처럼 느껴졌습니다. 20대엔 소주 서너 병도 거뜬했고, "술은 정신력"이라는 말을 입에 달고 살았습니다. 그런데 최근 국립암센터의 연구 결과를 접하고 나서야 깨달았습니다. 그건 능력이 아니라, 제 몸이 버텨준 것이었을 뿐이라고요.
암 발병률과 술의 관계, 이제는 '한 잔'도 예외가 없습니다
2023년 9월, 국립암센터가 10년에 걸쳐 진행한 연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표본 집단이 무려 200만 명을 넘는 규모였습니다. 우리나라의 건강검진 시스템 덕분에 가능했던 이 연구의 결론은 단 하나였습니다. 술은 하루 반 잔도 몸에 이롭지 않다는 것입니다(출처: 국립암센터).
이 연구에서는 음주량과 암 발병률(癌 發病率)의 상관관계를 분석했습니다. 여기서 암 발병률이란 특정 집단 내에서 새롭게 암이 발생하는 비율을 의미합니다. 결과를 보면, 하루 한 잔 음주 시 암 발생 위험이 3% 증가하고, 다섯 잔 이상에서는 20%까지 높아졌습니다. 구강암, 식도암, 방광암은 물론이고, 생존율이 가장 낮다고 알려진 췌장암과의 연관성도 확인되었습니다.
저도 한때는 '반주(飯酒) 정도는 약주'라는 말을 믿었습니다. 와인은 심장 건강에 좋다는 말도 곧이곧대로 받아들였습니다. 그런데 이게 주류 업계가 오랫동안 유지해 온 마케팅 논리였다는 사실을 이제는 압니다. 국립암센터의 이번 발표는 그 논리에 공식적으로 종지부를 찍은 셈입니다.
아세트알데하이드(Acetaldehyde)라는 물질이 이 과정에서 핵심입니다. 아세트알데하이드란 알코올이 체내에서 분해될 때 생성되는 중간 대사산물로, 강력한 발암 물질로 분류됩니다. 저는 필름이 끊긴 적이 없었는데, 돌이켜보면 그게 이 물질을 빠르게 처리하는 체질이었을 뿐, 발암 위험에서 자유로웠던 건 아니었습니다.
음주가 건강에 미치는 위험 요인을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아세트알데하이드 누적으로 인한 구강암, 식도암, 간암 위험 증가
- 수면 장애 유발 및 야식·과식으로 이어지는 관상동맥 질환 악화
- 혈당 수치 불안정화로 당뇨 전단계 진행 가속
- 간세포 손상 누적으로 인한 간경변, 간암 위험 상승
- 췌장 기능 저하로 인한 췌장암 발병 위험 증대
당뇨 전단계(Pre-diabetes)라는 진단도 여기서 빼놓을 수 없습니다. 당뇨 전단계란 혈당 수치가 정상 범위를 벗어났지만 아직 당뇨병 기준에는 도달하지 않은 상태를 말합니다. 문제는 이 수치가 나빠지기 시작하는 시점이 실제로 몸이 이상해진 시점보다 5년가량 앞선다는 점입니다. 술이 혈당 조절 기능에도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을 저는 너무 늦게 알았습니다(출처: 보건복지부).
간 해독과 비움의 시간, 숙취해소제가 정답이 아닌 이유
술을 마시고 난 다음 날 아침, 저는 늘 숙취해소제부터 찾았습니다. 컨디션이든 여명이든 손에 잡히는 대로 집어 들었고, 그게 간을 살리는 일이라고 믿었습니다. 제가 실수한 부분이 바로 여기였습니다.
간의 대사 작용(代謝 作用)이라는 개념을 먼저 이해해야 합니다. 대사 작용이란 우리 몸이 섭취한 물질을 에너지로 전환하거나 분해·배출하는 일련의 생화학적 과정을 말합니다. 알코올을 처리하느라 지친 간에 숙취해소제까지 들어오면, 간은 또 다른 화학 성분을 분해하기 위해 일을 재개해야 합니다. 콩팥(신장)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쉬어야 할 시간에 다시 가동되는 셈입니다.
제가 직접 경험해 보니, 숙취해소제를 먹고 난 날보다 아무것도 먹지 않고 속을 비워둔 날의 회복 속도가 훨씬 빠르다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물론 개인차가 있겠지만, 몸이 스스로 정화할 시간을 주는 것이 핵심이라는 판단은 지금도 변함이 없습니다.
해장술이나 콩나물해장국에 반주를 곁들이는 것도 같은 이유로 피해야 합니다. 해독 중인 간에 또다시 알코올을 투입하면 간세포 손상이 누적될 수밖에 없습니다. 간은 재생력이 있는 장기이지만, 그 재생에도 시간과 한계가 있습니다.
과음 후 몸을 올바르게 회복시키는 방법을 순서대로 정리하면 다음과 같습니다.
- 당일: 이온음료나 숙취해소제도 삼가고 속을 최대한 비운다. 구토는 자연정화 반응이므로 진정될 때까지 기다린다.
- 허기질 때: 바나나 한두 개로 속을 달래는 것으로 시작한다.
- 식사 재개 시: 가공식품은 제한하고, 살아있는 채소류 위주로 섭취한다.
- 이후 3일: 튀긴 음식과 가공식품을 줄이고, 채소 착즙 주스로 독소 배출을 돕는다.
- 음주 다음 날은 절대 연속 음주하지 않는다.
착즙(搾汁)이란 과일이나 채소를 압착해 원액만 추출하는 방식으로, 섬유질 제거 없이 영양소와 수분을 빠르게 흡수할 수 있게 해 줍니다. 제 경험상 이 방법이 간과 콩팥이 회복할 시간을 가장 효과적으로 확보해 주는 실용적인 선택이었습니다.
또 한 가지, 건강기능식품도 마찬가지입니다. 아스파라거스 추출물이든 뭐든, 만들기 위해서는 가공과 화학 첨가제가 들어갑니다. 간이 쉬어야 할 때 또 다른 가공물을 처리하게 만드는 건 결국 같은 원리입니다.
저는 지금 술을 완전히 끊었습니다. 한때 소주 서너 병은 일상이었고, 커피도 하루 수십 잔씩 마셨습니다. 그 시절을 떠올리면 지금도 이불킥이 나올 정도입니다. 특히 억지로 술을 권했던 자리들이 생각날 때면 그 자리에 함께 했던 분들에게 미안한 마음이 앞섭니다. '딱 한 잔'이 이제는 더 이상 안전하지 않다는 사실이 과학적으로 확인된 이상, 술에 관대했던 지난 습관을 돌아보고 몸에게 비움의 시간을 돌려주는 것이 지금 할 수 있는 가장 솔직한 변화라고 생각합니다.
이 글은 개인적인 경험과 의견을 공유한 것이며, 전문적인 의료 조언이 아닙니다. 건강 관련 결정은 반드시 의료 전문가와 상담하시기 바랍니다.